김어준 :
그 공포에 대처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바로 좌, 우다, 난 그렇게 생각해. 우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이해한다고. 그렇게 생존이 상시로 위협받는 약육강식의 환경에선 내가 더 강한 포식자가 되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더 악착같이 그걸 독점해,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겠다. 그게 난 굉장히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해. 당연히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지. 나는 죽고, 옆 사람이 살면 뭐해.
그래서 그들이 인지하는 세계에선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게 도저히 죄가 될 수 없는 거야. 당연한 생존의 권리지. 그래서 더 강한 자가 더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도 죄일 수가 없어. 마땅한 권리 행사일 뿐이지. 그리고 그렇게 고생해서 자기 것을 챙겼는데, 만약 그걸 누군가 가져가거나 남들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봐.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그들에게 사유재산은 대단히 중요한 거야.
자기가 강해서 획득한 자산, 그걸 남에게 뺏기지 않을 권리, 그렇게 확보한 자산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위계, 그렇게 형성된 계급의 유지, 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질서, 그 질서의 지속적 보장, 그들이 인지하는 세계에선 그런 것들이 무척 중요해지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그 격차로 인한 불평등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되는 거야. 뒤처지거나 약한 건 전부 자기 탓이니까.
이명박이 항상 나태해지지 말라고 하잖아. 그 말뜻은 이런 거지. 내가 강한 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잘나서고, 내 덕에 내가 여기까지 온 거다. 난 그렇게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다. 열심히 살지 않고, 불평불만 늘어놓는 자들, 남 탓만 하는 자들, 그 모든 건 자기 탓이다. 그러니 뒤처진 자들은 남 탓할 거 없다. 여기서 ‘남’은 바로 대통령까지 된 이명박 자신이지. 그러니 날 탓하지 말고, 정권을 탓하지 말고, 네 일이나 열심히 해라. 그런 소리지.
노력만으론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사회구조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아. 청소부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가난한 게 아닌데, 그런 건 관심 없어. 이명박 항상 자기는 뭐든 해봤다고 주장하잖아. 내가 해봐서 안다고. 그건 자기는 여기까지 왔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니들도 그렇게 해보라는 소리거든. 그러니까 니들은 니들이 못나서 그런 거라는 말이지. 성공한 우의 전형적인 사고 패턴이야.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무능으로 환원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장악한 시스템 자체에 대해선 시비를 못 걸게 만드는 거지. 씨바.
그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우는 공포에 지배당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본능적 대응이야. 두려우니까, 무서우니까, 자신만이라도 살아남겠다며 발버둥 치는 것들의 리액션. 그래서 난 우는 세계관이 아니라 반응이라고 생각해. 공포와 마주한 동물의 반응. 그런 수준의 반응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도 다들 하는 거거든. 식량이 두려운 겨울을 견디고 봄까지 살아남기 위해 가을에 졸라 많이 쳐먹는(웃음) 곰의 적응과 하등 차이가 없는 거라고.
그래서 우의 엔진은 공포라고. 그 공포를 경쟁 대상에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은 엄숙, 비장한 것이고. 그 경쟁에서 이길 경우 자신이 너무 대견해서 안하무인이 되고. 졸라 촌스럽지. 조갑제가 칭송하는 우의 비장미가 바로 그런 속성을 가진 거지. 그렇게 불확실성이란 공포를 상대하는 동물적 반응, 그 관점으로 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봐.
이런 건 기질적인 것이고 타고나는 거라고 봐. 게다가 치열한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가르치고, 넓게 머리 써서 지혜롭게 협동하기보다 잔머리 써서 다른 사람을 이기는 놈이 잘난 놈이라고 세뇌시키는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우가 대다수인 건 더더욱 당연한 거지. 우가 본능적이고 일차원적이잖아.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것이 나를 둘러싼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보다 쉽고 자연스럽거든. 유아적이라고 할 순 있어도 말이지. 현상 뒤의 구조를 읽어내는 건 막대한 정신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여기서 한국의 우가, 한국적 보수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 또한 얻을 수 있어. 그 정서적 단서를. 북한은 한마디로 불확실성 그 자체거든. 마치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밀림의 포식자처럼. 그럴 경우 그 두려움을 가장 손쉽게 처리하는 방식 중 하나는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버리는 거야. 공포스러운 대상을 윤리적 단죄의 대상으로 바꾸는 거지. 그쪽이 훨씬 처리하기 간편한 감정이거든. 무섭다고 하기보단 나쁘다고 하는 거지. 무서워서 싫은 게 아니라 악해서 싫다고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북한에 대한 우리나라 우의 반응은 한마디로 원시인 수준이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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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건 기질적인 것이고 타고나는 거’라고 말한 김어준의 표현이 내 머리를 맴돌고 있다. 내가 비록 스스로 좌로 치우쳐 있는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우적인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좌로 치우쳤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록 우의 반응이 원시인의 수준이라고 하지만, 나로서는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고... 내가 고생해서 챙긴 것을 쉽게 남에게 나눠주기 아까운 감정의 동물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보다 못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능력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아직 나는 완전한 우가 되지 못하는 것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중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자신은 아직 완전히 우가 향유하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어서... 그것이 분하고 억울해서... 뭐라고 욕을 할 것을 찾다가... 마침 좌의 주장을 찾아내었고... 그것을 가지고 우를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정상에 도달하지 못한 우의 모습이... 젊은 혈기의 운동권 시절을 보내다가... 이제 좀 살만하고 여유를 찾아가면서... 점차 자신과는 동떨어진 좌의 논리를 한꺼풀씩 벗겨내다가...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파에 속해버리는 정치인들... 그들에게 변절자라는 손가락질을 하는 우리는... 변절을 할만한 성공조차도 얻을 능력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좌에서 우로의 전향자는 김문수, 엄기영, 정운찬, 이재오, 신지호... (이들이 원래 좌이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리고 과거 4.19와 6.10 항쟁을 거쳤던 당시의 민주투사들... 이제는 사회의 중심층이거나 노년층이 되어서 우의 이데올로기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지지층들...
많은 서민들 중에서 우에 대해 비판도 못하고, 그저 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우가 제시해 놓은 성공이라는 것을 동경은 하지만, 그 성공까지 갈 수도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소위 '민중'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 민중은 단순하다... 아니 순진하다... 이런 순진한 대다수 민중을 소수의 성공한 우가 지배한다. 그리고 그 지배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선전한다. 그리고 가끔 자기들이 먹다가 남은 것 중에서... 버리기 아깝지만 그래도 생각하는 척 하면서 베풀어주는 부스러기를 감지덕지하라고 한다.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정신 차리자... 어쨌든 약육강식의 시대 속에서 강한 자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 우의 속성이라면... 그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강한자의 폭력을 스스로 짊어지면서 ‘사랑’을 외친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 좌, 우를 뛰어넘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향한 외침이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우의 습성을 갖고, 좌인척 하는 속임수...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면 어쩔수 없이 좌인척하는 것이든... 좌, 우의 극단적인 것에 치우치지 말고... 합일점을 찾아야 한다는 도올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